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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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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11일 목회 칼럼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원하는 일을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때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이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자유가 가져오는 불안과 책임을 두려워하여 다시 새로운 속박에 의존하는 역설을 분석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도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불안하고, 자녀가 독립한 뒤에도 그들의 미래를 염려합니다. 마음과 삶을 묶는 쇠사슬은 반드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으려는 갈망,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자유로운 사람입니까? 사도행전 16장에는 놀라운 역설이 등장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 발에 차꼬까지 채워졌지만, 한밤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반면 자유롭게 움직이며 죄수들을 통제하던 간수는 처벌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은 자유로웠고, 쇠사슬을 채운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누가 진정 자유로운 사람입니까? 세상이 말하는 자유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삶에서 시작됩니다. 참된 자유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를 붙드시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그 자유는 두려움을 이기게 하고,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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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10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0일차 | 요한복음 20-21장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아침묵상본문 요한복음 20-21장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아직 어두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 제자들의 마음도 어두웠습니다. 모든 것을 걸고 따랐던 주님은 죽으셨고, 그들이 기대했던 미래도 함께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옮겨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빈 무덤을 보고도 부활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달려와 빈 무덤을 확인했지만 아직 성경이 말씀한 부활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요 20:1-10).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까이 서 계셨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마리아야" (요 20:16).익숙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마리아의 눈이 열렸습니다. 죽음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절망의 장소였던 무덤이 부활을 처음 증언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그날 저녁 제자들은 문을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닫힌 문을 넘어 그들 가운데 서셨습니다."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주님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했던 제자들을 책망하는 말씀으로 다시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상처를 지니신 바로 그분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지만 도마는 믿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못 자국을 보고 손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요 20:25).여드레 뒤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도마의 의심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7).도마의 입에서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요한복음은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선언으로 시작했습니다 (요 1:1). 이제 십자가와 부활을 지나 한 제자의 입술에서 같은 진리가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됩니다. 예수님은 단지 세상의 주님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시며, 단지 하나님에 관해 가르쳐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우리도 때로 도마처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눈앞의 상황이 달라져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한 일이 이루어지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주님이 살아 계심을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9).요한은 우리가 바로 이 믿음에 이르도록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밝힙니다."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성경을 읽는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아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며, 그분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요한복음의 마지막에는 또 한 사람의 실패한 제자가 등장합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7).주님은 베드로의 실패를 마지막 장면으로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다. 실패한 제자를 다시 찾아오시고 사랑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사명도 맡기셨습니다."내 양을 먹이라" (요 21:17).부활은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실패한 사람을 다시 일으키시고 새로운 삶으로 부르십니다. 도마의 의심을 믿음의 고백으로 바꾸시고, 베드로의 실패를 목양의 사명으로 바꾸셨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의심하는 순간이 있고 실패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믿음이 흔들렸다는 이유로 주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닫힌 문 안에 숨어 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의심하던 도마를 찾아오셨으며, 실패한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오늘 말씀 앞에서 다시 고백하십시오."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내가 모든 것을 이해해서 드리는 고백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고백입니다.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의심을 믿음으로, 두려움을 평강으로, 실패를 새로운 사명으로 바꾸시며 다시 주님을 따라 걷게 하십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눈앞의 상황 때문에 믿음이 흔들릴 때에도 말씀을 의지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도마와 함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진실하게 고백하게 하시며, 실패했을 때에도 우리를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믿게 하옵소서. 베드로를 다시 세우시고 사명을 맡기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다시 일어나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그 이름 안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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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9일차 | 요한복음 17-19장2026년 10월 9일 금요일 아침묵상본문 요한복음 17-19장다 이루었다"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 19:30)십자가를 앞둔 마지막 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바라보며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몇 시간 뒤면 붙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리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두려움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끝까지 이루려는 순종이 담겨 있습니다."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 17:1).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높아지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 주는 십자가를 통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뜻이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곁에 있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훗날 그들의 말을 통해 자신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요 17:20). 그 기도 안에 오늘 우리도 들어 있습니다."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주님은 우리가 세상을 떠나 숨어 살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기를 기도하셨습니다.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십니다.군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주님은 도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칼을 들었을 때도 말씀하셨습니다."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 18:11).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붙잡히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에게 갑자기 닥친 비극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받아들이신 순종의 잔이었습니다.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묻습니다."진리가 무엇이냐" (요 18:38).진리가 무엇인지 묻는 빌라도 앞에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면서도 군중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진리의 음성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했습니다.예수님은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신 채 골고다로 향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바로 그 자리에서 완성되고 있었습니다.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다 이루었다" (요 19:30).이 말씀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의 탄식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일을 완성하셨다는 승리의 선언입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내어 주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마침내 그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요 1:29).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 말씀 위에 서 있습니다.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무엇인가를 더 이루어 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의로워져야 하고, 실패한 것을 만회해야 주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다 이루었다."내가 이루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내가 얼마나 신실한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끝까지 순종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한 죄책감과 실패를 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 눌릴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나를 위해 순종하시고,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주님께서 이루신 일에 무엇을 더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 은혜를 믿고 감사함으로 살아가십시오.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고, 세상 속에서 진리를 따르며, 주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십시오.십자가에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는 오늘도 우리의 구원과 삶을 붙드는 은혜의 말씀입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나의 의와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 하지 않고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주님의 완전한 구원을 믿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실패와 죄책감에 눌릴 때마다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말씀의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서 세상 속에서도 주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주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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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6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8일차 | 요한복음 13-16장2026년 10월 8일 목요일 아침묵상본문 요한복음 13-16장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마지막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자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가까웠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곧 자신을 팔 유다가 있었고, 몇 시간 뒤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할 베드로도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이 붙잡히시면 두려움에 흩어질 것입니다.요한은 이 밤을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제자들이 끝까지 신실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연약함과 실패를 모두 아시면서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자격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주님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사랑입니다.예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요 13:4-5).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가장 낮은 사람이 맡던 일이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십자가는 이미 이 작은 방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예수님의 사랑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사랑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와 우리를 섬기시는 사랑입니다. 발을 씻기신 손은 곧 십자가에 못 박힐 손입니다.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신 주님은 곧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를 기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주님은 나의 연약함을 아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넘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붙드는 힘보다 주님이 나를 붙드시는 사랑이 더 강합니다.제자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우리도 앞날을 알 수 없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익숙했던 길이 막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상황을 먼저 설명해 주시기보다 자신을 바라보게 하십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우리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무엇이 참인지 혼란스러울 때 우리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음이 메마르고 소망을 잃을 때 우리의 생명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주님은 제자들을 홀로 남겨 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요 14:26).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제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요 15:5).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열매를 만들어 내는 삶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삶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 때 사랑할 힘을 얻고, 견딜 힘을 얻으며, 다시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겪게 될 것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의 길이라고 해서 언제나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들려주신 말씀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과 승리의 약속이었습니다."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계신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실 승리를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믿음을 붙드는 것은 우리의 강함이 아닙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흔들려도 주님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 자신이 우리의 길이 되어 주십니다.오늘도 그 사랑 안에 머무십시오.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가까이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내 힘으로 살아가려 애쓰기보다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더 깊이 붙어 있으십시오.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걸으십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주님,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를 모두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마음이 흔들리고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내 힘으로 열매를 만들려 하지 않고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깊이 머물게 하시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께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게 하시고, 환난 가운데서도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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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5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7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7일차 | 요한복음 9-12장2026년 10월 7일 수요일 아침묵상본문 요한복음 9-12장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5)요한복음 9-12장을 읽으며 마음에 오래 남는 모습은 무덤 앞에 서 계신 예수님입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슬픔에 잠겼고, 함께 있던 사람들도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 11:35).죽음 앞에서는 우리가 붙들고 있던 많은 것이 힘을 잃습니다. 인간의 지식도 능력도 죽음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 앞에서는 믿음의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마르다의 마음에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 11:21).우리도 비슷한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조금만 일찍 응답해 주셨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왜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가.예수님은 마르다에게 고난의 이유를 모두 설명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자신이 누구신지를 말씀하셨습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 11:25).예수님은 부활을 주시는 분이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부활이며 생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상황이 원하는 대로 바뀌는 데 있지 않습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주님은 마르다에게 물으셨습니다."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6).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 갖는 확신이 아닙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붙드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아직 무덤 안에 있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했습니다.예수님은 무덤 앞으로 가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신 뒤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나사로야 나오라" (요 11:43).죽었던 사람이 걸어 나왔습니다. 죽음도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요한복음 9장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뜹니다. 1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10:11). 11장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십니다. 서로 다른 장면들이 한 분을 가리킵니다.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는 빛이시며,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시는 목자이시며, 죽음보다 강하신 부활과 생명이십니다.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은 이제 자신의 죽음을 향해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십니다. 다른 사람을 무덤에서 불러내신 분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십자가는 예수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자리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사로의 무덤에서 나타난 생명의 능력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완전하게 드러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도 옮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돌이 놓일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상처일 수도 있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염려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그 자리에서 주님은 먼저 우리의 믿음을 물으십니다."이것을 네가 믿느냐."오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무덤 앞에 서 있을 때에도 생명이신 주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눈에는 끝처럼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음조차 마지막이 아닙니다.오늘도 우리의 상황보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두려움보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함께 걸으십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오늘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주님, 우리의 슬픔과 눈물을 아시며 함께 울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상황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주님이 누구신지를 믿게 하옵소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생명을 내어 주신 주님을 따라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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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6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6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6일차 | 요한복음 5-8장  2026년 10월 6일 화요일 아침묵상  본문 요한복음 5-8장생명의 떡, 생수의 강, 생명의 빛"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예루살렘 베데스다 못가에 서른여덟 해 동안 병으로 누워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누군가 자신을 물에 넣어 주기를 기다렸지만 물이 움직일 때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가가 물으셨습니다."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6).병자는 자신의 형편을 설명했습니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5:8). 서른여덟 해 동안 누워 있던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었습니다.놀라운 치유를 목격한 종교 지도자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병자가 나았다는 사실보다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회복시키신 기쁨보다 자신들이 지켜 온 규칙이 더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일이 아버지의 일과 분리될 수 없음을 밝히십니다."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39).성경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끕니다. 말씀을 읽으면서도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성경이 가리키는 중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갈릴리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만 열두 바구니에 가득했습니다 (요 6:1-13). 사람들은 놀라운 기적에 열광했습니다.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는 움직임까지 일어났습니다 (요 6:15).다음 날에도 무리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를 알고 계셨습니다."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6).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떡을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떡보다 더 큰 선물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배고픔을 잠시 해결해 주는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오병이어의 표적은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에만 시선을 두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바라보게 합니다. 참된 생명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무엇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예수님 자신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는 데 있습니다.말씀이 어려워지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떡을 먹을 때는 많은 사람이 따랐지만 예수님 자신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 앞에서는 돌아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습니다."너희도 가려느냐" (요 6:67).베드로가 대답합니다."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6:68).베드로가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는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생명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초막절이 되자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명절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서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7).광야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억하던 절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생수의 근원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적인 형식이나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이것이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요 7:38-39).요한복음 8장에 이르면 예수님의 자기 계시는 더욱 분명해집니다."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깊은 굶주림을 채우십니다.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십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은 어둠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밝혀 주십니다.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은 점점 거세졌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셨으며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을 언급하시며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요 8:58).예수님은 단순히 아브라함보다 오래된 분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정체와 연결하여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사람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 했습니다 (요 8:59).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5-8장에는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타납니다. 서른여덟 해 동안 걷지 못했던 사람은 치유가 필요했습니다. 광야의 무리는 먹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초막절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에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연구하면서도 정작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예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자를 일으키셨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보다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만 찾지 말고 예수님 자신을 믿으라는 부르심입니다.우리도 주님께 많은 것을 구합니다. 건강을 구하고, 문제의 해결을 구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두 주님께 가지고 갈 수 있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예수님 자신을 원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너희도 가려느냐" (요 6:67).베드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6:68).배고픈 마음으로 생명의 떡이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목마른 영혼으로 생수를 주시는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앞길이 어둡게 느껴질 때 생명의 빛이신 주님을 따라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찾는 참된 생명과 만족과 빛이 있습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것만 구하다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우리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게 하시고, 영생의 말씀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말씀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히 바라보게 하시며,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서 흘러넘치도록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서도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따라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시고,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생명과 빛이 이웃에게 흘러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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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3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10.2026 (2026년 10월 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5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5일차 | 요한복음 1-4장  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아침묵상  본문 요한복음 1-4장태초에 말씀이 계시느니라"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창조 이전의 영원으로 이끕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만물이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고 그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요 1:1-4).요한이 소개하는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하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창조주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자신이 지으신 세상으로 들어오셨습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하나님께서 우리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있고, 사랑과 배신이 있으며, 질병과 죽음이 있는 인간의 삶 한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구약의 성막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요한은 그 영광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요 1:14).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몰려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자신보다 먼저 계셨던 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는 모습을 보고 외칩니다."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요한복음의 시작부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드러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제자들도 한 사람씩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안드레는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요 1:41).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 "와서 보라"고 초대합니다 (요 1:46).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잔치가 난처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표적은 놀라운 사건 자체에 시선을 머물게 하지 않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 줍니다."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2:11).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영광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습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표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어느 날 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성경을 알고 율법을 가르치며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지식보다 더 깊은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니고데모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종교적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했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길을 말씀해 주십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이야기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성취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요한복음 4장에서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와 달리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는 시간에 홀로 우물가를 찾았습니다. 여러 관계의 실패와 아픔을 품고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건네십니다."물을 좀 달라" (요 4:7).우물물을 둘러싼 대화는 어느새 한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자리한 목마름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물로 해결할 수 없는 갈증을 알고 계셨습니다."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요 4:14).여인은 자신의 삶을 채워 줄 무엇인가를 계속 찾아왔습니다. 사람에게서 찾았고 관계 속에서도 찾았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목마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과거를 알고 계셨습니다. 숨기고 싶은 삶까지 아셨습니다. 정죄하여 밀어내지 않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셨습니다.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는 여인의 말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밝히십니다."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요 4:26).물을 길으러 왔던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갑니다. 사람들을 피하던 사람이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던 사람이 자신을 아시는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합니다."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요 4:29).한 사람의 삶의 방향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달라졌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생수를 만났고, 숨어 있던 사람이 증인이 되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1-4장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증언한 세례 요한, 주님을 따라나선 제자들, 혼인 잔치에서 부족함을 경험한 사람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니고데모, 깊은 목마름을 품고 살아가던 사마리아 여인이 있습니다. 삶의 모습은 달랐지만 모두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우리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삶의 부족함 때문에 주님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니고데모처럼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질문을 품고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상처와 실패를 안고 하루를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영원하신 말씀이 바로 이런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 뒤에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와 상처와 목마름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 1:12).오늘 예수님 앞에 우리의 모습 그대로 나아가십시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갈증을 주님께 가지고 가십시오. 눈앞에 일어나는 일만 바라보지 말고 그 모든 표적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뒤 물동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일상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보라."오늘 우리의 삶도 같은 고백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 안에서 생명을 얻으며,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태초부터 계신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상처와 목마름을 아시면서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생명을 말씀하시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마음도 새롭게 하옵소서.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생명과 만족을 누리게 하옵소서. 말씀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더욱 깊이 믿게 하시며,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삶과 말로 전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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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10월 4일 목회 칼럼입니다.
    최근 관심을 받은 멜 로빈스의 『The Let Them Theory』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 그들을 끊임없이 통제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Let them.”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두라는 것입니다. 이 책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이해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교회에서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어느새 우리처럼 생각하고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신앙생활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다 보면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정말 충분합니까?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무엇인가가 더 필요합니까? “복음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사도행전 15장의 초대교회도 이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첫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셨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그 열린 문 앞에 다시 문턱을 세우려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할례와 율법도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긴 논쟁 끝에 베드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선언합니다. 야고보가 일어나 성경을 펼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성경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말씀을 따라가면 우리는 결국 그리스도에게 도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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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10월 3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4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4일차 | 누가복음 21-24장2026년 10월 3일 토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21-24장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7-48)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다가올 고난과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인자의 다시 오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숨기지 않으십니다. 박해가 있고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며 세상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21:19).믿음은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21:33).그러나 이제 예수님 자신의 고난의 시간이 찾아옵니다.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탁에 앉으십니다.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하시고, 잔을 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22:19-20). 이제 십자가에서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연한 비극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시는 새 언약의 희생이었습니다.그러나 그 거룩한 식탁에서도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사람인가를 놓고 다투었습니다 (눅 22:24).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고 계셨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질서를 가르쳐 주십니다."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눅 22:27).세상의 왕은 사람들의 섬김을 받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죄인을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섬김은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는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릅니다.그날 밤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앞에 두고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눅 22:42).제자들은 잠들고,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며,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고 아버지께서 맡기신 길을 걸어가십니다.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십니다.그런데 누가복음은 십자가 위에서도 계속되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보여 줍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눅 23:34). 그리고 곁에 달린 한 죄인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청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2-43).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버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고 계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구원에 실패한 자리가 아니라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신 자리였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외치십니다."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길은 아버지를 신뢰하는 순종의 길이었습니다.그러나 이야기는 십자가와 무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안식 후 첫날 새벽,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천사가 여인들에게 묻습니다."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눅 24:5-6).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그날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희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곁으로 다가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눅 24:13-16).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가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눅 24:27). 그제야 제자들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사건이 아니라 성경에 약속된 구원의 성취였음을 깨닫기 시작합니다.그리고 떡을 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예수님이 사라지신 뒤 두 사람은 서로 말합니다."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32).절망하며 예루살렘을 떠났던 사람들이 이제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마침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성경을 깨닫게 하시며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그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눅 24:44-47).그리고 제자들에게 선언하십니다."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통해 세상으로 계속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제자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했고, 잠들었으며, 도망했고,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낙심하여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말씀을 풀어 주시고, 눈을 열어 주시고, 믿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실패했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첫 제자들은 아니지만, 그들이 전해 준 사도적 복음을 통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복음을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삶의 자리에서 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오늘도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낙심하여 걸어가던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기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삶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나타내십시오.복음을 들은 사람은 이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게 하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감사드립니다. 낙심하고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며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하옵소서. 우리의 실패와 연약함에 머물지 않고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게 하시며,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삶의 모든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과 말로 전하는 충성된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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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10월 2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3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3일차 | 누가복음 17-20장2026년 10월 2일 금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17-20장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이 계속됩니다. 십자가가 가까워질수록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며, 그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누가복음 17장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눈에 보이는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미 그들 가운데 임하고 있었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죄인이 용서받으며, 잃어버린 자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으면서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인자가 다시 오실 날을 말씀하시며 노아의 시대와 롯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지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심판이 임했습니다 (눅 17:26-30).문제는 일상생활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 문제였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오늘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문제였습니다.그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기다림의 시대를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을 끊임없이 찾아갑니다. 아무도 그녀의 억울함에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재판장은 그녀의 간청을 들어줍니다 (눅 18:1-5).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 하나님이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끈질긴 간청을 들어준다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기 백성의 기도를 어찌 외면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눅 18:6-7).그리고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주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마지막까지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응답이 더디게 느껴져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 눈앞의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보일 때에도 끝까지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입니다.그러나 그 믿음은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믿음이 아닙니다.예수님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던 세리는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18:13).예수님은 바로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십니다 (눅 18:14). 하나님 나라의 믿음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겸손한 믿음입니다.누가복음 19장에 이르면 그 은혜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자 앞으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눅 19:2-4).그런데 놀랍게도 삭개오가 예수님을 찾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삭개오를 찾아보십니다."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눅 19:5).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눅 19:8).은혜를 만난 사람에게는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9-10).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에 올라갔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마침내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사람들이 환호하며 왕을 맞이하지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십니다 (눅 19:41). 그들은 평화의 왕이 가까이 오셨지만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성전에서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19:45-46).누가복음 20장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계속해서 공격합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거절했고, 마침내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내셨음을 말씀하십니다 (눅 20:9-16).이제 그 아들이 십자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7-20장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우리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될 하나님 나라 사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기도해도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고,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믿음이 필요합니다.과부처럼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세리처럼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십시오.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난 은혜가 우리의 삶과 관계와 물질을 변화시키게 하십시오. 그리고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다시 오실 주님을 잊지 마십시오.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것은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믿음입니다.오늘도 그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임하게 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느껴질 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않고 세리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시며, 삭개오처럼 주님의 은혜를 만난 우리의 삶에 참된 변화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잊지 않게 하시고, 인자가 오실 때 찾으시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사랑하고 섬기며 복음을 나타내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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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10월 1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2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2일차 | 누가복음 13-16장2026년 10월 1일 목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13-16장회개하라"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3)누가복음 13장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한 비극적인 사건을 전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들의 피를 제물에 섞었다는 끔찍한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비극을 당한 사람에게 특별한 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시선을 죽은 사람들의 죄에서 살아 있는 자신들의 삶으로 돌리십니다."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3).예수님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열여덟 사람의 이야기도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중요한 질문은 "왜 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눅 13:4-5).그래서 예수님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주인은 삼 년 동안 열매를 찾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하자 포도원지기는 한 해만 더 기다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땅을 파고 거름을 주어 다시 한번 열매를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눅 13:6-9).이 비유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가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열매 없는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래 참으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후회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삶의 방향이 달라지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그런데 누가복음 14장에 이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큰 잔치에 비유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핑계를 댑니다. 밭을 샀기 때문에, 소를 샀기 때문에, 결혼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눅 14:16-20).그들의 문제는 밭이나 소나 가정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초대를 사소하게 여겼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종에게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눅 14:21).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이들이 잔치의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하나님 나라의 문은 은혜로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의 초대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그리고 누가복음 15장에 이르면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따뜻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나아오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불평합니다."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눅 15:2).예수님은 그들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 목자,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는 여인, 그리고 집을 떠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눅 15:3-32).특별히 둘째 아들의 이야기는 회개가 무엇인지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먼 나라로 떠난 아들은 모든 것을 허비합니다. 결국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 싶을 만큼 비참한 자리까지 내려갑니다. 그때 성경은 아주 중요한 말을 들려줍니다."이에 스스로 돌이켜" (눅 15:17).회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들은 말합니다."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눅 15:18).그리고 그는 실제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그런데 복음의 놀라움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발견합니다. 아버지는 그를 불쌍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눅 15:20). 아들은 품꾼의 하나로 받아 달라고 말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며 발에 신을 신깁니다. 그리고 잔치를 엽니다."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눅 15:24).회개는 우리를 정죄하시는 하나님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오기 전에 이미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고, 돌아오는 죄인을 기쁨으로 맞아 주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큰아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십니다. 그는 집을 떠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동생이 돌아왔을 때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분노했습니다 (눅 15:25-30). 둘째는 집을 떠남으로 길을 잃었고, 첫째는 자기 의로움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은혜가 필요했습니다.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재물의 문제를 통해 다시 드러내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며 (눅 16:13),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날마다 호화롭게 살았던 부자는 자기 집 문 앞에 누워 있던 가난한 나사로를 보지 못했습니다 (눅 16:19-21).그의 문제는 단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듣지 않았고, 바로 곁에 있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죽음 이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부자가 형제들에게 누군가를 보내 달라고 간청하자 아브라함은 말합니다."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눅 16:29).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는 바로 오늘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계속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3-16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간절한 부르심이 있습니다."돌아오라."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주어진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큰 잔치에 초대받고도 세상의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초대를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둘째 아들처럼 멀리 떠났다면 아버지께 돌아오십시오. 큰아들처럼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은혜를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마음을 살펴보십시오.회개는 두려운 말이기 전에 은혜의 초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뜻이며, 돌아갈 아버지의 집이 있다는 뜻입니다.오늘 주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내가 붙들고 있어서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용서를 구해야 할 죄는 무엇인지 돌아보십시오.그리고 아버지께 돌아가십시오.우리가 한 걸음 돌이켜 아버지께 나아갈 때, 우리를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 은혜의 품으로 맞아 주십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래 참으시며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려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완고하게 하거나 회개를 내일로 미루지 않게 하시고, 오늘 우리의 마음과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옵소서. 둘째 아들처럼 주님에게서 멀어졌다면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게 하시고, 큰아들처럼 자기 의와 판단 속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 곁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시고 품어 주시는 아버지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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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9월 30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1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1일차 | 누가복음 9-12장2026년 9월 30일 수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9-12장전파되어야 하는 복음"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눅 9:51)누가복음 9장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 줍니다. 갈릴리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던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떠나십니다. 누가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눅 9:51).예루살렘에는 영광스러운 환영만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자신이 고난을 받고 버림받으며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미 제자들에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9:22).그럼에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기로 굳게 결심하십니다. 십자가는 우연히 맞이하게 된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걸어가신 길이었습니다.그 길을 걸어가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하거나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우리의 삶의 방향도 바꾸는 것입니다. 나의 뜻보다 주님의 뜻을 앞세우고, 나 자신을 높이는 것보다 낮아지고 섬기며, 날마다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제자의 길입니다.그러나 이 길은 몇 사람만을 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신 데 이어 칠십 명을 따로 세우시고 자신이 가실 각 동네와 지역으로 앞서 보내십니다 (눅 9:1-6, 10:1). 복음은 예수님과 몇몇 제자들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전파되어야 했습니다.예수님은 그들을 보내시면서 말씀하십니다."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눅 10:2).제자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보내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야 할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눅 10:9).복음은 우리가 간직하기만 하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셔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신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부름받습니다.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삶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눅 10:25-37).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 곁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지나갔지만 한 사마리아인은 멈추어 섰습니다. 그는 상처 입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었으며, 자신의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37).복음은 입술로 선포되지만 사랑의 행동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 때, 복음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 보이게 됩니다.하지만 예수님은 활동만을 강조하지 않으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 마르다가 많은 일로 분주해할 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눅 10:41-42).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먼저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과 섬김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쉽게 지치고 분주함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눅 11:2).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다시 살피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까마귀와 백합화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눅 12:31).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해 걷는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있는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자리입니다.복음을 전하는 일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제자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때로는 복음을 말로 전해야 하고, 때로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상처 입은 사람 곁에 멈추어 서야 합니다. 때로는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어야 하고, 때로는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오늘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을 전하십시오.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굳게 걸어가셨듯이 우리도 주님이 맡겨 주신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서 멈추는 소식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계속 전파되어야 하는 기쁜 소식입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과 십자가를 향하여 흔들림 없이 걸어가신 예수님의 사랑과 순종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복음을 마음에만 간직하지 않고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삶의 자리에서 담대히 전하게 하옵소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고,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는 일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오늘도 우리를 보내신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나타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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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9월 2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0일차 | 누가복음 5-8장2026년 9월 29일 화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5-8장복음을 듣고 따른 자들의 이야기"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눅 5:11)누가복음 5장은 갈릴리 호숫가의 한 아침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던 시몬 베드로와 동료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지쳐 있었고 이미 그물을 씻으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신 후 시몬에게 뜻밖의 명령을 하십니다."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4).평생 고기를 잡아 온 베드로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밤새 가장 좋은 시간에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앞세웁니다."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눅 5:5).그물을 내리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다른 배의 동료들을 불러야 했고 두 배가 잠길 만큼 고기가 가득 찼습니다 (눅 5:6-7).그러나 베드로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고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8).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한 순간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십니다."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눅 5:10).그리고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눅 5:11). 복음을 만난 사람의 삶에 새로운 방향이 시작된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찾아가신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준비된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온몸에 나병이 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깨끗하게 하셨고, 사람들이 지붕을 뚫고 내려보낸 중풍병자에게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눅 5:12-26). 그리고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세리 레위에게도 찾아가 말씀하십니다."나를 따르라" (눅 5:27).레위 역시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눅 5:28). 그리고 자신의 집에 예수님을 모시고 큰 잔치를 베풉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시는 것을 비난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 (눅 5:31-32).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병들었음을 아는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은혜를 구하는 사람을 부르십니다.이후 누가는 예수님께 나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 앞에 펼쳐 놓습니다. 사랑하는 종이 병든 백부장, 외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긴 나인 성의 과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신 죄 많은 여인,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눅 7:1-8:3). 그들의 형편은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예수님이 필요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그리고 누가복음 8장에 이르면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복음을 듣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같은 씨가 뿌려지지만 길가와 바위와 가시떨기와 좋은 땅의 결과는 서로 달랐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눅 8:4-15).그러나 제자들의 믿음도 언제나 강했던 것은 아닙니다.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중 큰 광풍이 일어나 배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잠들어 계시던 예수님을 깨우며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칩니다 (눅 8:22-24).예수님께서 일어나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자 모든 것이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눅 8:25).예수님과 같은 배에 타고 있으면서도 제자들은 풍랑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풍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계신 분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묻습니다."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눅 8:25).누가복음 5-8장은 바로 이 질문에 계속해서 답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고, 자연을 다스리시며, 마침내 죽은 야이로의 딸까지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눅 8:40-56).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베드로가 서 있었던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때로는 밤새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판단으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바로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라."믿음은 모든 상황을 이해한 뒤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누구신지를 믿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빈 그물을 바라보는 대신 주님의 말씀을 의지했듯이, 우리도 오늘 우리의 경험과 계산보다 주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나를 따르라."복음을 듣는 것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말씀을 마음에 품고 순종으로 응답하십시오. 풍랑이 일어날 때 환경보다 주님을 바라보고, 실패했을 때 자신의 능력보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죄와 연약함 때문에 주님에게서 멀어지지 말고 오히려 은혜가 필요한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복음을 들은 사람의 삶은 결국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으로 이어집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주님, 우리의 실패와 연약함 가운데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고 불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경험과 판단보다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게 하옵소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지 않고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인정하며 언제나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삶의 풍랑이 거세질 때 환경만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않고 바람과 바다도 다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도 복음을 듣는 데 머물지 않고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며 순종으로 열매 맺고,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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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Oct 03.2026 (2026년 9월 2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9일차 | 누가복음 1-4장2026년 9월 28일 월요일 아침묵상본문 누가복음 1-4장데오빌로에게 전한 복음의 소식"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누가복음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데오빌로입니다. 누가는 자신이 기록하는 이야기가 전해 들은 소문이나 아름답게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일을 자세히 살펴 기록한 확실한 복음의 증언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눅 1:1-4).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난 천사의 소식으로 이어집니다. 오랫동안 자녀가 없었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며, 그 아이가 장차 주님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눅 1:13-17). 인간적으로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선언합니다."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 1:37).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가능성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그리고 얼마 후 천사 가브리엘은 갈릴리 나사렛의 한 젊은 여인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전합니다. 그 아들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며, 다윗의 왕위를 이어 영원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눅 1:31-33).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모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믿음으로 응답합니다."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 1:38).마리아의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자신을 맡기는 믿음이었습니다.마침내 베들레헴의 밤, 하나님의 약속은 역사 속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화려한 왕궁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낮고 초라한 곳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소식은 가장 먼저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전해집니다."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천사가 전한 복음의 중심에는 세 가지 놀라운 이름이 있습니다. 구주, 그리스도, 주님입니다.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이신 아기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이시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이시며,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십니다.세월이 흘러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위에 임하시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눅 3:22).그러나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걸어가시는 길은 곧바로 영광의 길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신 예수님은 사십 일 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으십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시험,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얻으라는 시험, 하나님의 아들임을 기적으로 증명하라는 시험이 이어집니다 (눅 4:1-13).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첫 사람 아담이 시험 앞에서 넘어졌고 광야의 이스라엘도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패한 자리에서 순종하시며 구원의 길을 열어 가십니다.광야에서 돌아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자라신 나사렛의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펴서 말씀을 읽으십니다."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21).오랫동안 기다려 온 하나님의 구원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으며, 눈먼 자가 보게 되고, 눌린 자가 자유롭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을 통하여 이 땅에 임하기 시작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의 시작은 우리에게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여 줍니다.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올라간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내려오신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구원의 길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주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그리고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했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오는 복음입니다."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눅 2:11).예수님은 단지 세상을 위한 구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구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내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는 약속을 붙드십시오 (눅 1:37). 앞길을 모두 알 수 없을 때에는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삶의 무거운 짐과 죄의 억눌림 가운데 있다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십시오.복음은 오래전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건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 역사합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게 하시고, 마리아처럼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시며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심을 날마다 더욱 깊이 믿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 된 자와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경험하게 하시며, 우리 또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기쁜 복음의 소식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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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7일 목회 칼럼입니다.
    셰릴 샌드버그와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함께 쓴 『Option B』는 샌드버그가 남편 데이브 골드버그를 갑작스럽게 잃은 경험에서 시작됩니다. 남편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던 Option A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남은 질문은 “내가 원했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제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상처받지 않는 강인함이 아니라, 상실과 아픔을 지나면서도 다시 살아갈 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질병과 실패, 깨어진 관계, 자녀에 대한 염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원하지 않았던 ‘Option B’를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의 바울도 바로 그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며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던 바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에 맞아 죽은 사람처럼 성 밖에 버려집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그를 둘러섰을 때 바울은 다시 일어났고, 이후 자신이 상처 입었던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 다른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보여 주는 회복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우리에게 “강해져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상처 입고 쓰러진 우리를 다시 일으키고, 더 나아가 그 상처까지도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은혜의 통로로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상처 입은 나를 다시 일으키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나의 상처까지 사용하여 사람을 세우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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