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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2026년 10월 1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1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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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
조회 4회 작성일 26-10-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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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14일차 | 사도행전 9-10장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아침묵상 

본문 사도행전 9-10장 


은혜가 바꾸는 인생, 경계를 넘어서는 복음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


우리는 사람을 바라볼 때 지나온 삶을 먼저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얼마나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를 살핍니다. 한 번 마음에 새겨진 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과거를 알게 되면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입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도 현장에 있었고, 교회를 없애기 위해 집집마다 들어가 성도들을 끌어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조상들의 전통에 열심이었습니다. 자신의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을 찾아오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행 9:4).


사울은 예수님을 직접 박해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핍박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여기셨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과 얼마나 깊이 연합되어 계신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사울은 물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행 9:5).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행 9:5).


사울의 인생을 지탱하던 모든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울이 부정했던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사울은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안다고 확신했던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걸어가야 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은 사울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보내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성도를 해쳤고 자신들까지 체포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두려워하는 아나니아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


사람들은 사울의 과거를 보았지만 예수님은 사울을 통해 이루실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갔습니다. 자신들을 박해하던 사람에게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형제 사울아" (행 9:17).


짧은 한마디에 복음의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원수처럼 여겼던 사람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때로 사울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열심으로 정작 주님의 마음을 놓칠 때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언제나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을 찾아오셨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을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하나님의 은혜보다 크지 않습니다. 우리의 실패가 주님의 구원 능력을 제한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가장 완고한 마음도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번에는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였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습니다. 여전히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오랜 종교적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 베드로의 생각을 흔들어 놓으셨습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이 담긴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그것들을 잡아먹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베드로는 율법의 정결 규례를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행 10:15).


베드로는 처음에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찾아오고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하고 구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도록 하셨고, 베드로에게는 고넬료의 집으로 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고백했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행 10:34).


베드로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 복음의 넓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만의 구주가 아니십니다. 모든 민족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죄 사함을 주시는 구주이십니다 (행 10:43).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할 때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이방인들에게도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방인들도 동일한 복음의 은혜에 참여하게 하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울에게는 회심이 필요했고 베드로에게는 복음에 합당한 시선의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대적하던 삶에서 돌이켜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오랫동안 익숙했던 경계를 넘어야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바꾸어 주셔야 할 마음의 자리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과거를 쉽게 잊지 못하고 있습니까? 한 번 실망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 어려운 마음이 있습니까? 자신과 생각이 다르거나 문화와 배경이 다른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정해 놓은 기준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워진 교만과 편견의 벽을 허무십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사울처럼 자신의 확신을 절대화하지 않고, 베드로처럼 익숙한 생각에 갇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나니아처럼 두려움 속에서도 순종하며, 고넬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기다리는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은혜를 기억한다면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마음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를 오래 참아 주신 사랑을 기억한다면 누군가의 변화를 기다려 줄 수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바꿉니다.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바꾸고 관계를 새롭게 하며 사랑의 경계를 넓혀 갑니다.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나의 과거보다 크신 주님을 신뢰하고, 내가 미처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까지 품을 수 있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울처럼 자신의 생각과 열심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베드로처럼 익숙한 기준과 편견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했던 마음도 새롭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실패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셨음을 늘 기억하게 하시며, 받은 은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품게 하옵소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마음속에 세워 놓은 미움과 편견의 벽을 허물어 주옵소서.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시고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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