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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2026년 10월 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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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
조회 6회 작성일 26-10-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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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5일차 | 요한복음 1-4장  

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아침묵상  

본문 요한복음 1-4장


태초에 말씀이 계시느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창조 이전의 영원으로 이끕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만물이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고 그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요 1:1-4).


요한이 소개하는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하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창조주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자신이 지으신 세상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하나님께서 우리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있고, 사랑과 배신이 있으며, 질병과 죽음이 있는 인간의 삶 한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구약의 성막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요한은 그 영광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요 1:14).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몰려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자신보다 먼저 계셨던 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는 모습을 보고 외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요한복음의 시작부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드러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제자들도 한 사람씩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안드레는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요 1:41).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 "와서 보라"고 초대합니다 (요 1:46).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잔치가 난처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표적은 놀라운 사건 자체에 시선을 머물게 하지 않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 줍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2:11).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영광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습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표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성경을 알고 율법을 가르치며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지식보다 더 깊은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니고데모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종교적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길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이야기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성취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와 달리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는 시간에 홀로 우물가를 찾았습니다. 여러 관계의 실패와 아픔을 품고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건네십니다.


"물을 좀 달라" (요 4:7).


우물물을 둘러싼 대화는 어느새 한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자리한 목마름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물로 해결할 수 없는 갈증을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요 4:14).


여인은 자신의 삶을 채워 줄 무엇인가를 계속 찾아왔습니다. 사람에게서 찾았고 관계 속에서도 찾았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목마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과거를 알고 계셨습니다. 숨기고 싶은 삶까지 아셨습니다. 정죄하여 밀어내지 않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셨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는 여인의 말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밝히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요 4:26).


물을 길으러 왔던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갑니다. 사람들을 피하던 사람이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던 사람이 자신을 아시는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요 4:29).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달라졌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생수를 만났고, 숨어 있던 사람이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1-4장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증언한 세례 요한, 주님을 따라나선 제자들, 혼인 잔치에서 부족함을 경험한 사람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니고데모, 깊은 목마름을 품고 살아가던 사마리아 여인이 있습니다. 삶의 모습은 달랐지만 모두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삶의 부족함 때문에 주님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니고데모처럼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질문을 품고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상처와 실패를 안고 하루를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영원하신 말씀이 바로 이런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 뒤에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와 상처와 목마름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 1:12).


오늘 예수님 앞에 우리의 모습 그대로 나아가십시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갈증을 주님께 가지고 가십시오. 눈앞에 일어나는 일만 바라보지 말고 그 모든 표적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뒤 물동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일상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보라."


오늘 우리의 삶도 같은 고백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 안에서 생명을 얻으며,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태초부터 계신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상처와 목마름을 아시면서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생명을 말씀하시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마음도 새롭게 하옵소서.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생명과 만족을 누리게 하옵소서. 말씀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더욱 깊이 믿게 하시며,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삶과 말로 전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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